어제 한강성심병원 앞엘 갔습니다.

나눠주시는 촛불과 추모리본을 양손에 쥐고 한참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생명이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수술후 건강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그 말에 당신을 잠시 잊었습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알량한 제 마음이 그 말들을 이미

면죄부로 생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유언장에 써있던 말.

'모금은 하지마라. 모두 비정규직이니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당신은 주변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것도 모자라 생의 마지막까지도 주변을 살피는 그 따뜻한 시선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삶은 제 두 손에 꼭 쥐어진 촛불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추모리본을 달며, 생각합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신의 주검을 제 눈에 묻으려 합니다..

부디 편하게 가소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며 분신한 택시운전사 허세욱씨가 숨진 15일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피워 놓은 향이 쓸쓸히 피어오르고 있다. 허씨는 지난 4일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이날 오전 병세가 갑자기 악화해 숨졌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택시운전하며 FTA집회 ‘개근’
16년간 ‘생업’ 거른적 없어

15일 오전 11시23분 서울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중환자실. 보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반대하며 몸을 불사른 택시운전사 허세욱(54)씨의 인공호흡기가 떼어졌다. 사인은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

경기 안성에서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올라온 허씨는 관악구 봉천동 단칸방을 보금자리로 16년 동안 택시운전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그는 ‘민주택시연맹 서울지역본부 한독택시분회 대의원’이었지만, 젊을 때부터 노동운동과 소외계층의 삶에 눈을 뜬 것은 아니었다. 허씨는 지난 2월 참여연대와 한 인터뷰에서 “1995년 봉천6동 철거촌에서 철거를 막기 위해 나선 한 여성 빈민운동가가 철거반원들에게 맞고 끌려나가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관악주민연대, 서점 ‘그날이 오면’ 후원회 등 10여개 단체·모임에서 활동했다. 김장나누기 행사에도 참가할 만큼 이웃과 함께하고 나누는 삶에 열성이었다.

효순 미선 사건·평택기지 등
시민단체·나누는 삶에도 열성

민주노동당 관악구 지방자치위원회 나경채 위원장은 “대부분 20·30대인 당원들 사이에서 허씨는 보기 드문 50대였다”며 “3교대로 일하면서도 당 사무실에 꾸준히 나올 만큼 열성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허씨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며 “우리에겐 성실하게 택시운전을 하면서도 1인 시위를 위한 피켓을 차에 싣고 다닐 만큼 사회 참여에 열성적인 당원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앞 인문서점인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는 허씨의 유서에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이 언급된 것을 떠올리며 “장갑차 사건이 있었던 2002년 당시 서점 앞 가판대는 허씨가 가져온 유인물과 포스터로 도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허씨는 평택 미군기지 투쟁,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택시노동자와 관련된 유인물 등을 끊임없이 서점에 배달해 사람들에게 알리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허씨는 지난해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자유무역협정 반대 유인물을 돌리고 스크랩한 신문기사를 승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에프티에이 반대 전도사’라고 불렸다.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에는 빠지지 않았고, 지난달 29일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것도 교대 시간을 쪼갠 것이었다.

“내 자신 버린적없다 하더니…”

그리고 지난 1일 오후 3시59분, 허씨는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7년을 함께한 한독운수 동료로, 분신 전날 저녁 허씨를 만난 정기열(42)씨는 “청와대에서 1인 시위를 한 뒤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연장되자 늘 웃던 얼굴이 심각해졌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허씨는 평소 “과격한 투쟁은 옳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는 게 정씨의 전언이다.

분신 전 남긴 유서에서 허씨는 직장 동료들에게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라고 당부했다. 어려운 처지의 동료들에 대한 최후의 배려였다. 그는 또 유서에서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세상을 뜸으로써 결국 자신을 버리고 말았다. 하어영 기자, 정유경 수습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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