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P초보 bbungspoon의 셀프인터뷰

1. 왜 갑자기 LP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려 하는가?

요즘 LP마니아들 상당히 많다. CD의 기계적 음보다는 LP의 아날로그적 느낌에 끌린다는 느낌파부터,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음 이외의 파장을 싹둑 잘라낸 CD보다 LP의 소리가 훨씬 풍성하고 자연스럽다는 과학적 근거를 대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내가 다시 LP를 시작한 이유는 좀 다르다. 한달에 음반 구입 등에 투자할 돈이 여의치 않은 조건에서 좀 더 다양한 음반을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래도 옛날에 나온 LP들이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 몇년 전쯤 황학동에서 우연히 좋은 앨범들을 3-4천원 선에서 구했었던 기억도 있고... 무엇보다 근 몇년간 잘 써왔던CD플레이어가 그 날의 기분따라 연주를 가다서다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2. 아! 그렇다면 턴테이블은 있었다는 얘기인가?

예전 LP생활 하다가 접은 이유가 쓰던 턴테이블이 그 생명을 다했을 때 쯤이다. 고로 턴테이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네 집에 안쓰는 턴테이블이 있다는 얘기를 접수했고, 친구의 흔쾌한 선행을 넙쭉 물었다. 알고보니 상당히 좋은 턴테이블이었다. 지금도 중고가 15만원 정도를 상회하는. 10년 정도 쓰지 않던 물건이다 보니 조금 손볼데가 없진 않았지만 약간의 수리비를 들이니 정말 새것으로 거듭났다. 혹시 턴테이블이 없어서 LP를 엄두조차 내고 있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 열명 정도에게만 얘기해봐라. 분명히 머리에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쓴 턴테이블 하나쯤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은 경우 LP들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시길! 공짜로 얻은 턴테이블에 눈이 휘둥그레 질때 이성을 갖고 한 마디 과감히 날리시길. "근데 이걸로 무슨 음악 들었어?")

                                    >> 친구의 아름다운 선행이 물씬 풍기는 턴테이블 되겠다.
                                                                            (롯데전자의 LP-2000 모델)


                                >> 오래전 황학동에 구입했던 중고앰프. 뭐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막귀인 나에게는 수백만원의 앰프와 별차이 없다.
                                                                                         (인켈의 AK-650 / TK-600)

3. 초보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게 맞나 싶지만, LP생활의 장단점을 간략히 말해본다면?

이거 오히려 초보라서 할말 많다.내 애초계획은 한달에 음반 구입비로 1만 5천원 정도잡고 적어도 3-4장의 LP를 구입해 보자는 것이었다. 근데 사전 시장 조사조차 안해보고 예전의 아련했던 기억을 성급하게 일반화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인터넷에서 '중고LP'를 검색하면 정말 수많은 사이트들이 나오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가보고 내린 결과는 이렇다. 지금 세상에 나와있는 LP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 취향상 별로인 음반'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주 비싼 음반'이라는것이다. 예를 들어 김민기씨나 양희은씨의정규앨범 하나 사려치면 적어도 2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가능하다. 이거 원 새 CD보다도 비싸니...


4. 완전 판단미스 상황인 것 같다. 향후 LP 생활 지속여부까지 판단해야 할 단점인 것같은데...

그렇다. 근데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시간과 발품만 좀 들인다면 해결의 여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늘 오후에중고 LP로 유명한 회현동 지하상가를 다녀왔는데, 여기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했다. 워낙 물량이 많고, 또 제대로 정리가되어 있지도 않아서 원하는 앨범을 찾는데 고역이긴 하지만, 몇십분만 투자한다면싸고 좋은 앨범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여기도, 인터넷처럼 희귀음반이나 인기있는 음반이 고가이긴 하지만 인터넷보다는 저렴한 것 같다. 물론 판의 상태 등이 다를 수 있긴 하겠지만... 오늘 만원 달랑 들고 가서 양희은씨 음반 두 개를 업어왔다.

5.끝으로,LP 생활 이래서 좋다! 뭐 이런 것 좀 얘기해 달라.

글쎄. 워낙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긴한데... 얼마 안되긴 했지만 LP를 들으면 뭔가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처음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첫노래가 나오기 전까지의 그 지지직 하는 짧은 여백의 시간이 참 좋다.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의 접점이라고 할까. 그리고 플레이 중간중간 티딕하는 잡음 소리도 정감있고...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 물로 목욕도 씻겨주고, 혹시나 바늘에 먼지라도 붙었을까 노심초사 하기도 하고. 누가 그러더라. LP는 듣는게 아니고 연주하는 거라고.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은만큼의 소리를 들려준 다는 것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푸근하게 느껴지는 음색도 참 마음에 든다. 그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긴 참 어렵지만, CD가 말끔히 쭉 빼입은 20대 청년이라면, LP는 자연스럽게 중절모를 눌러 쓴 중년신사 같다. 언제 또 이 생활 접을 지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이 풍성하고 자연스런 느낌에 빠져볼 참이다. 혹시 LP를 시작해볼까를 망설히는 분이 계시다면 과감히 추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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